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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피를 말리는 최악의 여자 관상 - 악처 크산티페 - 세종시 용한 무당 점집 추천 후기 천향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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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굿엔트 작성일20-09-14 00:00 조회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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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처는 원래부터 나쁜 아내다?
결혼한 여성을 아내, 부인, 처 등으로 호칭한다. 인터넷 유머에 나오는 처의 종류는 다양하다. 고래고래 악을 쓰면 악처, 현모가 두 여자를 거느리면 현모양처, 아침마다 요강을 비우면 조강지처, 지금 매우 지쳐 있으면 현지처, 사는 곳을 잘 모르면 모처, 가까이에 살고 있으면 근처, 약간 찰과상을 입으면 일부다처, 사업으로 서로 돈을 벌면 거래처···.

여자에게는 양처의 얼굴과 악처의 얼굴이 동시에 존재한다. 남편에게 애교를 떠는 양처(良妻)와 남편을 앙칼지게 몰아붙이는 악처(惡妻). 사전적 의미의 악처는 마음이 바르지 못하고 행실이나 성질이 악독한 아내, 즉 ‘Bad Wife’를 가리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악처는 유난히 시대의 영웅에게 많았다. 나폴레옹의 처 조제핀, 링컨의 처 메리, 아우구스투스의 처 리비아, 아인슈타인의 처 엘자, 워싱턴의 처 마사, 유방의 처 여후, 푸치니의 처 엘비라, 하이든의 처 마리아 등이 악처 군단에 속한다. 특히 철학자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의 처 크산티페,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1756~1791)의 처 콘스탄체, 대문호 톨스토이(1828~1910)의 처 소피아는 세계 3대 악처로 불린다.

이 중 크산티페는 ‘악처의 원조’로 불린다. 이름의 영문명 ‘Xanthippe’가 악처라는 뜻으로 쓰일 정도다. 소크라테스에게 화가 난 크산티페가 악담 끝에 남편의 머리에 물을 끼얹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히 “천둥 번개 다음에는 큰비가 내리게 마련이지”라고 말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악처는 백년의 부작(不作)이라고 한다. 아내 나쁜 것은 백년의 원수라는 뜻. 자신뿐만 아니라 자손대대로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속담이다. 마치 악처는 있고 악부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처음부터 악처인 사람은 없다. 부인에게서 악처의 얼굴을 끄집어내는 것은 남편의 몫이다. 악처는 현대적 시각에서 보면 남편과 가정의 발전에 촉매제 역할을 했던 강한 아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거장(巨匠)의 아내들은 하나같이 남편이라는 거목에 가려 더 나쁘게 묘사됐다. 억울하게 악처의 오명을 뒤집어쓴 측면이 있다.

크산티페의 악행은 후세 사람들에 의해 과장된 부분이 있다. 자료가 부족하다 보니 상상력이 들어가 부풀려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처의 험담을 입에 달고 다녀 ‘크산티페=악처’라는 등식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혹자는 악처인 아내 덕분에 소크라테스가 철학에 매진할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처의 입장에서 보면 소크라테스는 추남에 나이 많고 경제력도 없는 구제불능이었을 것이다. 집안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제자들과 어울려 다니기만 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처 콘스탄체는 남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악보를 헐값에 팔아넘겨 세간의 눈총을 받았다. 덴마크 귀족과 재혼한 것도 못마땅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현모양처가 아닐지 몰라도 그리 부정(不貞)하거나 무식한 여자는 아니었다. 모차르트가 죽을 때 빚이 있었던 데다 자식들을 키우려면 악보라도 팔아야 했다. 몸이 아파 장례식에 불참했고, 허약 체질에도 모차르트와 9년 동안 살면서 6명의 아이를 낳았다. 재혼한 것도 사별한 지 7년 뒤였고, 둘은 함께 모차르트의 전기를 집필하기도 했다.

톨스토이의 처 소피아는 남편이 82세의 나이로 가출해 시골의 간이역에서 죽음을 맞게 한 원인 제공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소피아도 이제껏 알려진 것과 다르게 재조명되고 있다. 소피아는 악필로 유명한 톨스토이의 원고를 일일이 깔끔하게 정서해준 훌륭한 조력자였다. 48년간 남편과 동고동락하며 무려 13명의 자녀를 낳았다. 저작권 문제로 끊임없이 남편과 다툰 이유도 생계를 맡아야 하는 절박함에서 나온 당연한 요구였다.

“양처를 만나면 행복한 사람이 되고, 악처를 만나면 철학자가 된다.”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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